◈ 겨울의 구름들 =류시화= ◈
1.
겨울이 왔다
내 집 앞의 거리는 눈에 덮이고
헌 옷을 입은 자들이 지나간다.
그들 중의 두세 명을 나는 알고
더 많은 다른 얼굴들은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소리쳐 그들을 부른다.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는다.
겨울은 저 아래 길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2.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다.
밤에는 다만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온갖
부질없이 깊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
늘어뜨려진 가지, 때 아닌 붉은 열매들이
머리 위에서 창을 두드리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희고 창백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면
겨울의 구름들이 붉은 잎들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있었다.
등불의 심지만을 들여다보며 변함없는
어떤 흐름이 갑자기 멈춘 일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3.
아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장에 얼굴을 묻고
참이 들곤 했다,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고
나는 오갈 데가 없었다.
내 집 지붕 위로
겨울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곳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오래 불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더 큰 물결을
내 집 뒤로 데리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