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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 시의 세계***

흘러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by Danpung ! 2021. 12. 19.

◈ 흘러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정하= ◈ 저녁 강가에 나가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강물은 하류 쪽으로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흘러가고 있는 것은 강물뿐만이 아니라 둑 너머 길도, 사람도, 우리 인생도, 사랑도 저만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세상에서 정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쪽에서 서둘러 생겨나면 다른 한쪽에선 바쁘게 사라지고 있었으니까요. 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빨리 내 곁을 스쳐 지나갔던가, 생각해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가까이 하고픈 것들, 내가 간직하고픈 것들은 언제나 내 손길이 닿기 전에 저만큼 사라져버리고 잡히는 것은 언제나 쓸쓸한 그리움뿐이었지요.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는 그것이 재현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 날, 흘러가는 강물에 언뜻 비쳤다가 사라지는 밤풍경처럼 그렇게 내 삶도 흘러가는가 봅니다. 그렇게 내 사랑도 흘러가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