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편지 / 청송 권규학
(1)
슬퍼하지 말자
오곡백과 풍성한 이런 계절엔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자
아파하지도 말자
황금빛 출렁이는 들판을 보며
새싹이 겪은 지난 아픔일랑 잊어버리자
마냥 좋아하며
가없는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미더운 사랑이 있음에 행복해하자
늘 하얀 가슴으로
파란 하늘에 편지를 쓰자
'사랑해, 너를 사랑해'라고.
(2)
가을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샛노란 은행잎
예쁜 단풍잎
이름 모를 잿빛 이파리
책갈피에 꽂아두고 행복해합니다
오늘은 책갈피에 꽂힌 은행잎에
'사랑해, 사랑해요!'
수줍은 고백을 쓰고
당신의 주소를 적어 넣습니다
왠지 모를 흥분이 온몸을 누릅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칩니다
아침이면
스치는 바람결에 부치렵니다
하늘 먼 곳, 수취인 없는 천국 땅으로.
(3)
부는 바람에
햇살 깨무는 소리 들리고
과수밭엔 부끄럼 타는 과일들
가을빛 완연한 계절입니다
풀꽃이, 곡식이, 과일이
어쩌면, 우리네 사람들에게
세상 삶의 이치를 일깨우려는 듯
저마다 알곡을 보려는 노력이 애틋합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닐 테지만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가을 들녘을 보며 뉘우칩니다
긍정보다는 부정에 치우치고
낙관보다는 비관에 익숙했던
지적 허영심에 오염된 지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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