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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꽃잎 지던 날 김홍엽 / 낭송: 단이 권영임
거기서 그렇게 살았다
팔뚝과 손가락이 부르튼 자리
야위어가는 몸뚱이를 붙잡고
미어진 가슴의 생살을 뜯어 바르며
거기서 그렇게 살았다
이른 새벽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꽃을 틔워
그를 맞이하고 싶었다
차가운 담장 위에 꺼꾸로 매달려
거칠어진 등걸에 상처를 발라가며
꽃단추를 번갈아 달아매는 것도
그가 푸른 대문을 열고
불쑥 들어올 것만 같아서였다
휘여휘여 허공을 휘젓던 날들
기다림만큼 길어진 손가락의 세월들
환상이어도 좋았다
그의 목소리가 장못처럼 날아와 박혀도
섬섬 푸른 옷자락마다
송이송이 낙화하는 눈물 꽃
터질 것 같던 그 옛날 전설을 떠올리며
오늘도 속살 빚어 낸 꽃등 환하게 밝혀
손끝마다 꽃물 들여 곱게 단장하고
붉디 붉은 사랑 피워 올린다.
*김홍엽시집-'그 강물 깊이 흐르는 곳에는' 중에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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