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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 감동있는 글***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사랑 얘기

by Danpung ! 2011. 9. 11.

    1.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사랑 얘기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는 소년

 

양산을 받쳐 들고 앞장 엄마의 뒤를 따라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소녀

 

지게를 소년과 키를 석이

 

꽃향기를 맡고 있는 소녀

 

창가에 붙어서 밖을 보는 소년

 

교실에서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

 

서울에서 전학 소녀

 

유리창 닦으며 멀리 소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소년

 

징검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집배원에게 무언가 묻는 소녀

 

큰공굴리기에서 소녀와 짝이 소년

 

징검다리 한가운데에서 세수를 하는 소녀

 

갈대밭 속을 걸어가는 소녀

 

그대로 갈대밭을 바라보는 소년

 

개울가를 걸어가는 소년

 

소녀가 던지고 하얀 조약돌을 바라보는 소년

 

개울물 조약돌을 내려다보는 소년

 

메밀꽃밭 속의 소녀

 

메밀꽃밭 속의 소년

 

석양 빛을 받은 개울가

v

허수아비가 되어 팔벌리고 있는 소년과 소녀

 

소녀에게 무우를 건네주는 소년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무우를 먹는 소년

 

소년이 무우를 먹는 방법 그대로 따라하는 소녀

 

돌탑을 보고 멈춰선 소년과 소녀

 

비탈진 곳에 나란히 앉아 꽃을 보는 소년과 소녀

 

비를 맞아 추워서 떠는 소녀에게 옷을 덮어주는 소년

 

걱정스런 마음에 원두막 밖을 내다보는 소년

 

꽃다발을 품에 품은 소년을 보는 소녀

 

소년의 등에 엎혀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녀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벌판을 걸어가는 소년

 

하얀 눈이 내리는 벌판을 지게를 지고 걷는 소년

 

소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눈이 내리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년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사랑 얘기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 모자 씌워 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 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 위에 예쁜 꽃모자 떠가는데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 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 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 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 위에 예쁜 꽃모자 떠가는데



 
 
 

 

 

2. 아버지의 목발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버지의 신세도

 

딸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에 있었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신나게 몰려다닐 때도 그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말동무처럼 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대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는 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그 투정을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란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은 목발을 짚고 가야 했습니다.

 

길을 걷는 그들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이 큰길로 굴러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공을 주우러 큰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뒹굴어 위험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 날쌔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 집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애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았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내가 말렸지만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던 거야.

 

 

그러니까 그게 벌써 5년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지.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18.jpg

 



 

 

3. 내인생의 두번째 사랑


지난5년 동안 아내 몫까지 하며
아들을키우려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많았지만 그런 대로 잘 지낸 편이었습니다.
그런데어느 날, 사촌 누님께서

전화를하셔서 '세월도 이만큼 흘렀고 하니
이제는재혼을 해야지. 떠나간 사람도
그걸원할 거야.' 하며 사람을
소개하겠다고하셨습니다.

결국누님과 몇 번의 통화 끝에
저와동갑이고, 동생들과 어머님
뒷바라지하느라시집을 못 갔다는

그녀를만나게 되었습니다.
맞선보러 나가던 날,
아침일찍 일어나 문갑에 놓인 아내 사진을
손으로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사과했습니다.

'
여보!미안해. 혼자 살기 참 힘드네. 이해해 줘….'
듣는지마는지 사진 속의 아내는
그저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곤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녀가다가와 성규 씨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보기에

그녀의첫인상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저는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를병으로 잃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상대방건강에 관심이 많다고요.
그녀역시 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6
남매의맏딸인 그녀는 아버지께서
일찍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동생들
뒷바라지에,또 동생들 시집 장가 보내느라
정작자신은 연애 한 번

해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잊는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늦었지만
자신의행복을 찾으려고
저를만나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후,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자 저도
모르게제 황량했던 가슴속에서
점차따뜻한 모닥불이

피어오르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3개월쯤 지난 어느 날,
그녀가자기 집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녀는거실은 춥다며
안방으로저를 안내했습니다.

미색벽지에 노란 장판이 깔린 그녀의 방.
그방에서 그녀는, '원래 엄마가
쓰시던방인데 이제는 제가 써요.
하고수줍게 웃으며 따뜻한 생강차를
따라왔습니다.

그날 저는 오래도록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리고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했습니다.
"
못난사람이고 마음에 상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괜찮다면 수진 씨,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와결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청혼에 그녀는 일 주일만
시간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초조한 일 주일을 보낸 뒤
그녀에게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는뜻밖에도 너무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자기와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다르고, 종교도 달라서 안 되겠다고요.
인연이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 좋은
사람만나라면서 참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제게 보여준
호의가다 거짓이었을까요?
정말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습니다.그 상처를 다스리기까지
오래도록전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이듬해 가을, 어떤 집안 행사로 저는
사촌누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사촌 누님이

저를보자마자 대뜸 그랬습니다.
"
동생,수진이 소식 못 들었지?
나도얼마 전에 같이 서예 하던 사람 만나서
소식들었는데 수진이가 죽었다네.
위암으로….

동생이랑결혼하려고 맘먹고
종합검진받으러 갔다가
위암진단을 받았나 봐.

7
개월동안 혼자 투병하다가
석달 전에 세상 떠났대….
너무안 됐어…. 착하고 젊은 사람이. 쯧쯧…."
순간저는 시야가 갑자기 뿌옇게

흐려지면서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무슨운명의 장난일까요?
왜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이렇게 떠나야만 할까요? .

그후 저는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그녀의유골이 안치되어 있다는 용미리
추모의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들도함께 데려갔지요.

납골당….칸칸이 안치된 작은
사진속에 낯익은 그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전히그 갈색 코트를 입고

희미하게웃고 있는 청초한 그녀.
저는아들과 함께 들고 간 꽃을
그녀앞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
수진씨, 우리 아들이에요. 절 받아요…."

아들도제 마음을 아는지 마치
자기엄마에게 하듯 깎듯이 절을 했습니다.
외롭게앓다 혼자 그 먼 길 떠난 수진 씨,

부디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시길….
그날아들과 손잡고 그곳을 내려오면서
저는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아들아!아빠는 이제 다시는

사랑하지않으련다.
내인생의 사랑은
두여자로 충분히 족하니까….

 

4.내 몸이 반쪽 일지라도 나는 행복하다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장애인 여성을 소개합니다

선천적 하반신 장애인인 미국 콜로라도 푸에브로(Puelo) 출신인 35살의 엄마

로즈마리 시긴스(Rosemarie Siggins,일명 로즈).

로즈 시긴스는 반쪽 몸뚱어리로 선천적으로 희귀병인 '천골 발육 부전증'

(Sacral Agenesis, 척추골 아래 5개의 뼈가 발육이 안되는 증세)으로 다리가 없는 상태이다.

로즈마리 시긴스는 26세에 어머니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이 없었지만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놀며 자랐으며 성격이 낙천적이다.
일상생활은 발 대신 두 손으로 일을 한다.

로즈 시긴스의 삶의 의지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데다  남편의 사랑이  네티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이들 부부는 모두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로즈마리 시긴스의 평범한 말이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걸요" "반쪽 몸뚱어리로 행복하게 삽니다."

 

두다리를 가진것이 부끄럽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며 행실이 부족하면 차라리 다리가 없는 저 분 만 못하다는 생각이...

늘 행복이 쭈~~욱 이어지시길 기도합니다.

 

 

 

5. 어느 도둑 이야기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는 우리집에 침입을 했고
나를 두꺼운 끈으로 묶어놓았다
내 집에 도둑이 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전날 밤 딸네 집에 간 아내에게 자고 오라 말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가진 돈… 돈 있는 대로 다 내…놔!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어."

20
대 젊은이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칼을 들이댔다.
소름이 돋았다. 환갑이 넘었으니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
내가 돈을 주면 날 죽이지 않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순간 도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푸른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왜 그리 선량해 보였는지….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도둑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
젊은이, 언제부터 이랬나."
"
늙은이가 말이 많아.
이상한 소리 말고 돈이나 꺼내!"

그는 칼을 내 얼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들이댔다.
눈앞에 보이는 칼 뒤쪽으로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
나는 죽음이 안 무서워.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내 손주도 자네 나이쯤 됐을걸."
"
이 영감탱이… 빨리 돈 내놔!"

그의 목소리는 더 격양돼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
돈 줄게.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 테니
우리 타협하세." "……."
"
도둑질이 아니라 내가 빌려주는 것이면 어떻겠나?"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
내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나?
환갑이 넘은 내가 젊은 자네만큼 똑똑하겠나."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며 말을 다시 이었다.

"
만약 이번이 처음이라면 자네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안 되잖아.
잡혀가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별 후회가 없지만
자네는 너무 아까워. 내가 양보할 테니 빌려주는 것으로 하세."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마스크가 움씰움씰 움직이는 것이 그는 분명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간댕이가 부었지.
칼을 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내 생각처럼 그는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
에이 씨 못해 먹겠네."
그는 마스크를 벗더니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나도 목이 메여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
"
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고....
다 폼이었나? 허허허"
그는 제 손으로 묶었던 끈을 다시 풀어주었다.

"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
…제 어머니가 혈액투석 중이신데
병원비가 너무 밀려 있어서요.
한 달 후엔 저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에 너무 쪼들려서…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장롱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
금반지와 목걸이를 꺼냈다.
그리고 손주 등록금에 보태주려고 찾아두었던
돈을 그의 무릎 앞에 내밀었다.

"
할아버지! 이러시면…"
"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빌려주겠다고"
"
됐습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
그냥 나가면 도둑이 되는 거야.
나는 도둑에게 이 돈을 빼앗긴 게 아니라
앞길 창창한 청년에게 빌려주는 것이라네.
나중에 갚으면 되고."

그 시간. 청년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는 돈과 패물을 받아들고 내 집을 얌전히 걸어나갔다.
나는 그를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는 "성실하게 벌어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 는 말을 남기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사라져 갔다.

- 월간 낮은울타리의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

 

 

6.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북의 무자비한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진 것이 이제 59년 전의 옛일이 되

었습니다. 그 해에 태어난 갓난아이가 내년이면 회갑 노인이 되게 되었으니, 세월이 화살 같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어느 일간지 1면에 사진 한 장이 실렸는데 커다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도로변에 여럿 서있고, 그 사진에 적힌 한 줄의 글이 우리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무슨 내용일까,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의 소년병 한 사람이 당시 18세였는데 그동안 행방불명자 명단에 있었는데 그 유해가 발굴되고 확인되어 고향 땅에 돌아와 켄터키 렉싱턴 교외의 국립묘지에서 영결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이드 스티덤, 계급은 상병, 이 아들이 돌아올 것을 날마다 기다리던 노 부모는 10년 전에 이렇게라도 고향 땅을 찾아온 그 아들을 맞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미합중국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6·25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는 54246, 부상자는 103284, 행방불명 8177, 그런 희생 없이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오늘 자유를 노래하며 이 번영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로이드 상병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아들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감기지 않는 눈을 감고 저 세상으로 가신 그의 부모님께 매우 죄송스럽다는 한 마디를 전하고자 합니다.

 

 

 

7.장애를 극복한 '소년'

 



사진속의 소년은

 코디 맥카스랜드(Cody McCasland) 라는 남자 어린이인데요.

이 소년은,

지난 2001년 희귀병인 천골 발육 부전증(Sacral Agenesis)으로
신장 결함과 하반신이 발달 되지 못한 채 태어났다고 합니다.



발가락도 4개만을 가지고 태어난 코디.

태어난지 3일만에 첫 수술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무려 15번의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어린 소년이 그 많은 수술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타깝네요.



하지만, 코디는 항상 해맑은 미소와 특유의 순진함을 잃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요즘에는 스포츠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해
지난 2008년 센트럴 오클라호마 대학 장애인 경기에서
60m, 100m
달리기, 25m 자유형, 배영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되었다고 하네요 ~

화제의 인물이 되기에 충분 한 듯 !!!



코디는 특수 제작된 장애용 다리를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축구는 물론 골프, 자전거, 암벽타기 ;;;, 자전거, 카누,

심지어는 제트스키까지 도전하고 있다고..

이러한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면서 많은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 까지도 '희망의 전도사' ?다고 합니다.

코디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코디의 이름을 딴

' 팀 코디'(Team Cordy)라는 자선단체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이 자선단체를 통해 코디는 각종 모금활동은 물론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다리를 잃어 상심한 군인에게도

희망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이렇게 어린 소년이 생각 까지 깊네요....

;;; 배워야 할 듯;;; !!

코디의 장래희망은 장애인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하네요.

꼭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