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파란하늘 울리는 글...
매달 70만원 벌며 기부… 세상을 떠난 후, 세상을 부끄럽게 하다
짜장면 배달원 김우수씨의 마지막 흔적
그의 책상, 외롭지 않았던… 후원했던 아이들 3명의 사진
액자 속에 덩그러니… 서랍엔 보물같은 아이들 편지
그의 옷, 부끄러움 없었던… 대통령 초청때도 배달복 입어 "평소의 모습이 제일 떳떳해"
그의 일상, 외로움과 싸웠던… 휴대폰엔 저장된 번호 없어, 영화 관람이 유일한 취미
한달 70만원 벌이의 변두리 중국집 배달부.
창문도 없는 4.95㎡(약 1.5평)짜리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 어려운 형편의 어린이들을 돕던 후원자.
7세 때 고아원에 버려져 지난 24일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이틀간 아무도 찾지 않은 병실에서 쓸쓸하게 숨진 사람.
김우수(54)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중국집 '동보성'은 김씨가 지난 5년간 주말마다 배달부로 일한 곳이다.
가게는 33㎡(약 10평) 크기에 불과하다.
주인 이금단(45)씨는 "김씨 아저씨는 출근 시각보다 한 시간 일찍 가게에 나와
영업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이 쪽방에 몸 누이고… 책상엔 후원했던 아이들 사진이…
김우수씨가 살던 서울 논현동의 고시원방.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이 방은 1인용 침대와
간이 책상과 옷장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전부다.
성실했던 김씨는 유품이 된 지갑 속에 5000원권 3장과 1000원권 45장을 남겼다.
다음 날 배달에 필요한 거스름돈으로 쓰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돈이었다.
김씨는 주말마다 오전 8시부터 13시간 배달일을 하고,
오후 9시 일당 9만원을 받아 마을버스를 타고 아무도 없는 고시원 쪽방으로 돌아갔다.
◆월세 25만원 고시원 쪽방
동보성에서 마을버스 열다섯 정거장 떨어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 구석 방.
김씨는 창문도 없는 좁은 방에서 4년 전부터 월세 25만원을 내고 살았다.
27일 주인을 잃은 방 한쪽에 놓인 책상 위에는 그가 후원해 온
아동 3명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책상 서랍에는 후원했거나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받은 감사편지들이 보물처럼 놓여 있었다.
"용돈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게임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매일 노는 것은 아니에요."
"보내주신 14.25달러로 가족을 위한 옷과 농작물을 구입했습니다.
항상 후원자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에티오피아 후원아동)"
"후원자님 언제나 저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드려요."
▲ 김우수씨의 책상에는 후원하던 아이들로부터 받은 편지가 보관돼 있었다.
철자법도 틀린 편지들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의 외로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는 이 사연들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김씨는 158㎝, 55㎏의 작은 체격이었고,
웃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2~3벌뿐인 옷은 언제나 깨끗이 빨아서 입었다.
동보성 주인 이씨는 "2009년 연말에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을 대통령이 초청한 적이 있어요.
다들 잘 차려입고 가라고 했지만, '평소 내 모습이 제일 떳떳하다'면서
배달 일할 때 입는 검은색 옷을 입고 갔어요.
꾸미지 않는 사람이었어요"라고 했다. 고시원 총무 박모(34)씨는 "월세도 한 번 밀린 적 없고,
TV를 볼 때면 남에게 피해를 줄까 봐 볼륨을 최대한 줄여서 보던 사람"이라고 김씨를 기억했다.
◆하루 담배 두 갑 피우던 사람이…
김씨는 지난 2006년부터 매달 5만~10만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데 썼다.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우고, 소주 2병을 마셨지만, 아이들 후원을 시작하면서
"술, 담배 살 돈이면 1명 더 도울 수 있다"며 모두 끊었다.
자포자기했던 김씨는 감방 안에서 어린이재단이 발간한 잡지 '사과나무'를 읽고 인생을 새로 살기로 했다.
주위 사람들은 "잡지에서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어린이들의 사연을 읽고 며칠을 울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돕고 싶은 아이들이 생기자 제대로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제2의 인생, 그의 마지막 5년은 세상 누구보다 뜨거웠다.
쪽방 구석 사진 속의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